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소녀들이 작은 도시 ‘완주’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성장과 우정, 상실과 회복을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여름이라는 찰나의 계절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정서적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청춘의 복잡한 내면을 따뜻하고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이 작품은 김금희 특유의 감성적 서사와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로, 독자에게 ‘성장’이란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서론: 첫 여름, 완주 – 기억과 상처를 품은 소녀들의 뜨거운 여정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여름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그 시기를 “열여덟,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라 답할지도 모릅니다. 무언가가 끝났지만, 동시에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그 공백 같은 시간.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는 그런 여름을 배경으로, 각자의 이유로 어긋났던 두 소녀가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는 이야기입니다. 완주라는 작은 도시, 그곳에서 함께 보낸 뜨거운 여름날의 시간은 단순한 재회가 아닌,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치유의 여정이자, 성장의 한 페이지로 기록됩니다.
잊힌 이름, 다시 부르게 되는 시간
주인공 ‘예진’과 ‘유정’은 과거에 절친이었던 사이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감정이 어긋나고, 말하지 못한 오해들이 쌓이며 관계가 끊어지게 됩니다. 졸업을 앞두고 모든 것이 흘러가버리는 듯한 시간 속에서, 예진은 유정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두 사람이 ‘완주’라는 도시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완주는 단지 배경으로서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마치 이들의 감정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 느리고 고요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자연의 변화, 마을 사람들의 일상, 낯선 도시의 여름 냄새까지 모든 것이 두 사람의 마음속 갈등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첫 여름’이란 말에 담긴 이중성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첫 여름’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적 키워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최초로 뜨겁게 체험한 ‘진짜 여름’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전까지의 삶과는 결별하게 되는, 감정적으로 가장 격렬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김금희 작가는 ‘첫’이라는 단어에 담긴 불안정함과 기대, 설렘과 고통을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예진과 유정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여름을 지나갑니다. 단순한 여행이나 우정 회복이 아닌, 두 인물은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이 겪은 상실, 외로움, 두려움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결국,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순간, 이 여름은 단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게 된 순간’으로 전환됩니다.
김금희 특유의 정서적 밀도와 문장의 힘
『첫 여름, 완주』는 김금희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의 파동’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외형적으로는 큰 사건이 없지만, 독자는 문장을 따라가는 내내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됩니다. 짧고 조용한 문장 안에 인물의 정서를 응축시켜 놓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그로 인해 독자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장면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인물 간 대화 장면에서는 ‘말하지 않은 말’들이 더욱 강하게 다가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대화 같지만, 문장 사이사이에 흐르는 침묵과 회피, 또는 다정한 배려는 각자의 상처와 애틋함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강한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우정은 기억되고, 회복될 수 있다
청소년기 우정의 파열은 어른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기의 관계는 단순한 친밀함 이상의 의미—‘존재의 확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첫 여름, 완주』는 그런 청춘의 우정이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진과 유정은 과거를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조금 더 이해하고, 미워했던 순간의 자신도 받아들이며,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은 성장의 진짜 의미—‘내가 나를 용서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 모두에겐 ‘완주의 여름’이 있다
『첫 여름, 완주』는 단지 한 여름의 소녀들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누군가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금희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아직 늦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합니다. 오해와 상처로 멀어진 관계도,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 다가갈 수 있다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회복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
조용하지만 깊고, 평범하지만 강한 감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에게도 언젠가 ‘완주의 여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여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순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