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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시끄러운 세상 속 침묵의 힘

by cocoly_chae 2025. 7. 14.

클레어 키건의 중편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조용한 순간과 작은 선택이 어떻게 도덕성과 회복력, 인간 존엄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는지를 살펴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표지 – 눈 덮인 들판과 날아가는 새 그림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연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의 소설입니다. 표지에는 눈 내린 마을 전경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장면이 담겨 있어,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전합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도서)

 

서론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서사와 강렬한 드라마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더 자극적이고, 더 빠르고, 더 많은 것을 담으려는 이야기들 속에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은 '작지만 강한' 문학의 전형입니다. 절제된 문장과 함축적인 서술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소리 없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힘을 지녔습니다.

키건은 침묵과 여백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시끄러운 시대 속 조용한 이야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은 1980년대 아일랜드의 한 작은 마을입니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 석탄 상인 빌 펄롱의 평범한 일상을 따라갑니다. 그는 아내와 다섯 아이를 부양하며 검소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수도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그는 우연히 냉방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없이 얼어붙은 채 있는 그 아이는, 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수도원이 감추고 있는 어두운 현실을 상징합니다. 펄롱은 그 장면을 목격한 이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과장이 아닌 정확성으로 빚은 언어

키건의 문체는 절제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문장 한 문장에 정확한 호흡과 무게를 담아, 독자가 그 문장 너머에 있는 감정과 긴장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펄롱의 사소한 동작들—잠시 멈춰 서는 몸짓, 아내와 나누는 짧은 대화,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선—그 안에 그의 혼란과 양심의 소리가 조용히 담겨 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다.” — 클레어 키건의 문장은 침묵 속의 진실을 말합니다.

 

양심, 공동체, 작지만 의미 있는 저항

펄롱은 영웅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고, 사회를 바꾸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러나 그가 목격한 진실은 그로 하여금 침묵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작가는 지역사회라는 ‘공동체’의 힘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침묵의 폭력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펄롱의 저항은 조용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단하고, 지속적이며, 무엇보다도 진심어립니다.

 

작품 속 '성탄절'이 의미하는 것

이야기의 배경은 12월, 성탄절을 앞둔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선물을 준비하고, 장식을 걸고, 가족과의 저녁을 준비합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따뜻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외면당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수도원 안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키건은 성탄절이라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상징을 통해, ‘진짜 구원’과 ‘진짜 자비’에 대해 묻습니다. 우리는 기념일이 되면 당연한 듯 선의를 베풀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시선을 돌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펄롱이 수도원에서 겪는 충격은, 바로 그런 이중적인 성탄의 풍경을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작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진짜 믿음과 사랑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다시 묻고 있습니다.

 

펄롱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

작품에서 펄롱은 현재의 도덕적 선택을 두고 고민할 때, 반복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나, 다정한 한 여성에 의해 키워졌고, 그 덕분에 지금의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그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았던 경험은, 지금 자신이 소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직감을 강화시킵니다.

이 회상 장면은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키건은 펄롱이 왜 이 상황에서 외면하지 못하는지를 심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계합니다. 그의 행동은 감정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에 근거한 ‘선택’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고발을 넘어서, 독자 각자의 과거와 양심까지 불러냅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 살아왔고,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펄롱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울리는 메시지

이 작품은 단지 과거의 한 시기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거대한 외침보다 진정성 있는 침묵이, 시스템 속에서 눈 돌리지 않는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그리고 다음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론: 작은 이야기, 깊은 울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짧지만, 독자의 삶을 긴 시간 동안 흔들 수 있는 작품입니다. 키건은 과장 없이, 설명 없이, 그리고 화려함 없이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놓친 작은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어떤 침묵에 동참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