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별 작가의 소설 『시한부』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한 인물들의 진심 어린 내면 독백과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통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정한 삶을 마주할 것인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삶, 죽음, 사랑, 후회, 용서를 진한 감정선 안에 담아내며, 독자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이 있는 인문적 성찰을 선사합니다.
1. 시한부 선언이 던지는 존재의 질문
소설 『시한부』는 주인공이 삶의 시한부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단순한 죽음의 경고가 아니라,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남은 시간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백은별 작가는 이 질문을 바탕으로 인물의 감정뿐 아니라, 관계와 기억,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다층적으로 전개합니다. 시한부라는 설정이 비극적 감정을 유발하는 대신, 오히려 인물과 독자가 마주해야 할 ‘살아 있음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듭니다. 독자는 곧 자신의 삶과 마주하며 “행복이란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2. 병과 죽음 앞에서도 피어나는 인간관계
백은별은 시한부 상황에서도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남은 시간이 겹치는 가족, 오래된 친구, 연인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시한부 선고 이후에 더욱 선명해진 감정들—후회, 용서, 사랑, 연민—을 드러냅니다. 예컨대, 평소 자신에게 소홀했던 부모와 화해하고자 하는 장면, 오래된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 연인과 한순간의 평범한 일상이라도 함께하려는 장면들은 정말 미세한 공감마저 전합니다. 이를 통해 백은별은 ‘시간이 남았을 때만 가능한 위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줍니다.
3. 내면 독백과 시적 묘사의 깊은 공감
정서적 공감은 백은별 문체에서 비롯됩니다.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 독백과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따라갑니다. “이 시계를 본 적이 있다”는 문장 하나에도 과거의 기억, 관계의 밀도, 시간에 대한 불안이 밀려 들어옵니다. 또한, 백은별은 시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를 섞어 감정과 풍경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먼지들이 춤추듯 떠 있었다”는 문장은, 시한부 상황에서도 잔잔한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합니다. 이처럼 내면의 파도가 고요히 피어오르게 하는 문장은, 독자의 감정에도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남깁니다.
4. 시간의 상징으로 전하는 메시지
『시한부』에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닙니다. 소설 전반에는 시계, 라디오, 계절의 변화와 같은 시간의 메타포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는 주인공의 내면 상태와 외부 세계를 동시에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시계의 똑딱거림은 남은 시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계절이 바뀌는 장면은 삶과 죽음 사이의 순환 회복을 의미하며, 볕이 잘 드는 방, 한겨울의 창가와 같은 공간은 시간의 단단함과 영원성을 동시에 상기시킵니다. 이를 통해 백은별은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과 실제 시간은 다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삶의 속도를 자각하도록 유도합니다.
5. 시한부 감정이 맺는 위로와 성장의 서사
시간이 한정된 상황은 갈등과 위기를 고조시키지만, 동시에 위로와 성장을 위한 기회를 만듭니다. 시한부를 마주한 주인공은 삶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게 되며,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진하게 체감합니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는 독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태도—지금 이 순간을 다정히, 진정으로 살라는 메시지—로 이어집니다.
6.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 관계 회복을 위한 선물로
『시한부』는 특별한 독자층만을 위한 작품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 관계에 상처 받은 이들, 혹은 일상의 의미를 상실한 이들에게도 좋은 위로이자 지침이 됩니다. 특히 “마지막이면,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 앞에 선 독자에게는 각자의 답을 찾는 여정이 됩니다. 독서 모임에서는 ‘관계 회복’과 ‘삶의 의미’ 주제로 토론이 가능하고, 감정 표현 훈련이나 글쓰기 활동의 텍스트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적절한 책, 삶과 죽음 사이에서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는 작품입니다.
7. 백은별 문체의 미학, 삶을 담는 시선
백은별은 감정이 급격히 요동치지 않도록 균형감을 지닌 문체를 유지합니다. 시적이지만 과하지 않으며, 감정은 드러내되 과잉되지 않는 어조입니다. 짧지만 무게 있는 문장들이 잔상처럼 독자에게 남으며, 감정의 밀도가 높은 대화나 심리 묘사를 적절히 배치해 작품 전체의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감정에 민감한 독자뿐 아니라 문학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도 부드럽게 감정의 파도에 동참하게 합니다.
마무리: 삶은 시한부처럼 더 따뜻해질 수 있다
『시한부』는 단순한 죽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의 유한함 속에서도 온기를 지키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진한 위로와 공감으로 전달합니다. 백은별의 글을 통해 독자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행동은 무엇일까”를 곱씹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인사하면서 건네는 ‘안녕’,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미안하다는 말이 갖는 무게를 새삼 깨닫게 되는 작품입니다. 삶이 늘 긴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한정된 시간이기에 더 다정해질 수 있습니다.